이전 포스팅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번에는 리스닝과 스피킹에 관한 얘기다. 직전 포스팅에서 영어 전용 언어중추라는 뇌 속의 회로뭉치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상언어중추와 베르니케 영역, 그리고 브로카 영역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다. 이 중에서 리스닝과 스피킹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영역은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다.

뇌를 공부해보면 일반 상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병리적 사례가 참 많기도 하다. 그 가운데 리스닝과 스피킹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임상적 장애로 ‘실어증Aphasia’이라는 것이 있다. 실어증이란 말 그대로 ‘말을 잃어버리는 장애’이다.


그런데 말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일까?


실어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브로카 실어증이고 다른 하나는 베르니케 실어증이다. 직전 포스팅을 눈여겨보신 분이라면 바로 눈치 채셨겠지만, 브로카 실어증은 말을 이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이고, 베르니케 실어증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장애를 뜻한다.


베르니케 영역은 베르니케라는 독일 의사의 이름을 딴 것이고 브로카 영역은 브로카라는 프랑스 의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명칭 자체에 큰 의미는 없다.


그런데 이런 실어증들이 아이러니한 것은 브로카 실어증의 경우, 말을 못하지만 남의 말을 이해는 할 수 있고 베르니케 실어증의 경우,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이해할 수가 없고 심지어 이 상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로카 실어증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하고, 베르니케 실어증은 누가 욕을 하든, 사랑고백을 하든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만 멀뚱거려야 하는 가슴 아픈 상황이 연출된다. 과장이 아니다. 심한 경우, 브로카 실어증과 베르니케 실어증이 동시에 발병하기도 한다.


모두 임상에서 실제로 마주치는 병리 현상들이다.


이 포스팅의 제목인 ‘브로카 말은 배로 들어’라는 좀 이상하게 들리는 말은 대학교 2학년 즈음인가, 신경해부학 과목 시험공부를 위해 급조했던 말이다. 다시 말해, 브로카 영역이 스피킹 전용 중추이고 베르니케 영역이 리스닝 전용 중추라는 내용이 아주 오래 전부터 관련 학부 저학년 과목 시험문제에 이미 출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왜 의학 계통의 기초 상식을 언어학 계통에서는 여전히 무시하고 있을까? 서로 다른 별나라의 일인 걸까? 참으로 안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칭 따위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스피킹 담당 영역과 리스닝 담당 영역이 뇌에서부터 서로 분리돼 있고, 어떤 특정한 영역을 다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 영역의 기능만 따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간단한 지식을 영어 학습에 반드시 접목해야 한다. 그래야 영어에 쓰는 돈, 시간,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스피킹을 반복 훈련하면 브로카 영역이 발달하고, 리스닝을 반복 훈련하면 베르니케 영역이 발달한다.


하지만 각각 따로 훈련하지 않으면 해당 기능은 발달하지 않는다.


문법책을 천만 번 읽어도 스피킹을 따로 하지 않으면 영어로 말할 수 없다. 입을 움직이지 않고 리스닝만 죽어라 해봤자 영어 스피킹은 안 된다. 이것이 팩트이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 시스템에서는 토익 듣기를 만점 받아도 외국인 앞에서 벙어리가 되는 게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발음할 수 없으면 들을 수 없다.”거나, “무조건 계속 듣기만 하면 언젠가는 영어가 된다.”는 소위 영어 전문가라는 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뇌는 발음할 수 없어도 들을 수 있고, 계속 듣기만 하면 듣기 실력만 향상되도록 기능이 정교하게 분리되어 있다.

팔 운동을 하면 팔 근육만 커지고, 다리 운동을 하면 다리 근육만 커지는 게 상식 아닌가? 마라톤 선수의 온 몸이 아주 건강할 것 같지만 하체와 심장 근육이 아무리 발달해도 상체에 골다공증이 생기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운동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낫다. 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온 몸의 건강이 두루두루 조금씩은 좋아진다. 하지만 팔 운동을 따로 안 하는데 팔 근육이 커져봤자 얼마나 커질까? 이와 같이 스피킹만 죽어라 연습해도 리스닝이 조금은 나아지고, 리스닝만 죽어라 연습하면 스피킹도 조금은 나아진다. 약간의 시너지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종합 훈련에는 전혀 비할 바가 못 된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즉, 원어민의 말을 잘 이해하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말하고 싶다면 앞으로는 리스닝과 스피킹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반드시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집중적으로 훈련하시기 바란다.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본 포스팅은 지금은 절판시켰지만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필자의 저서, ‘뇌 속에 영어가 산다의 본문을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향후 개정판 출간을 위한 초고이므로 따끈한 신작의 초안을 미리 보신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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